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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책

앙: 단팥인생 이야기

by 7시에 말자씨는 2022.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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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을 하려고 넷플릭스를 켜니 무슨 알고리즘인지 '앙, 단팥 인생 이야기'가 다시 추천 영화로 올라 와 있다.

수채화 같은 화면과 잔잔하게 파고드는 이야기는 뜨개질하면서 혼자 보기엔 참 좋은 영화이다.


길모퉁이 '도리 하루'라는 가게에는 어쩌다 운명이 꼬여버린 남자 센타로(나가세 마사토시)가 있다. 센타로는 우연히 연루된 폭력 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보석으로 풀려난다. 보석금을 마련하느라고 진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은 좋아하지도 않는 단 도라야키를 팔고 있지만 장사에도 삶에도 딱히 의욕이 없다. 대충 만든 그의 도라야끼는 맛이 없고 가게는 망해간다. 사쿠라가 만개한 어느 4월, 이 가게를 기웃거리던 76세 도쿠에(키키 키린) 할머니가 같이 일을 하기 시작한다. 도쿠에는 일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평생 간직해온 꿈을 이 가게에서 이룬다. 그녀는 50년을 만들어온 단팥소 만드는 법을 센타로에게 가르치고 가게는 생기를 되찾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가게를 매일 드나드는 카나리아를 키우는 소녀 와카나(우치다 카라)에 의해 도쿠에가 한센병 환자란 소문이 떠돌며 사람들은 발길을 끊고 도쿠에는 마을을 떠나 한센인들과 지내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레프로사리움 (leprosarium) : 사회에서 쫓겨난 한센병 환자들이 모이는 곳

도쿠에는 한센병 환자이다. 청소년기에 그 사실을 안 가족들은 그녀를 레프 로사리움으로 보내고 도쿠에는 그곳에서 평생 살게 된다. 한센병은 피부나 말초신경계에 병균이 침범해서 조직을 변형시키는 질환이라고 한다. 6세기에 처음 발견된 병이지만 사람들은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 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두창이나 매독처럼 살이 끔찍하게 썩어 일그러지는 한센병을 접한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와 혐오감에 휩싸였으며 그 병을 신이 내린 저주라고 생각했다. 의학적 지식이 없었던 사람들은 한센병 환자들을 죄인으로 몰아 격리시키고 박해하면서 그들의 공포를 벗어나려고 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데도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짓밟힐 때가 있어’ 

영화속에서 도쿠에가 한 말이다. 이 대사에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한다. 누구의 삶에서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은 있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대부분 잘 헤쳐 나간다.
하지만 인생 자체가 감내하기 힘든 큰 사건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는 제어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 살아가면서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사람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무기력해진 사람들, 영화 속 도쿠에처럼 단지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격리당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이 세상에 그 어떤 잘못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잘못은 다수와 다른 소수에 속해 있다는 것, 그것이 전부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레프로사리움에 가두는 폭력은 인간의 어떤 본성에서 비롯된 것일까? 혐오인가, 아니면 공포인가? 우리는 때때로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알려는 노력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그 폭력을 휘두른다.

오늘도 레프로사리움에 갖쳐있는 수많은 '도쿠에들'의 해방로는 있는 것일까? 

해방로는 있다. 바로 연대이다. 


도쿠에, 센타로, 오카나같은 작고 약한 소외된 존재들의 연대는 서로 깃털을 포개는 새들처럼 연약해 보이지만  강하다.
오카나가 키워달라고 부탁한 카나리아는 도쿠에에 의해서 새장 밖으로 풀려나고 도쿠에는 한센 환자들의 위로와 작별 인사를 받으며 긴 생애를 마치고 드디어 그녀의 레프로사리움에서 벗어난다. 건물 주인에게 쫓겨난 센타로 역시 이제 더 이상 어둡고 조그만 가게에서 찾아오는 손님만 기다리진 않는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햇살이 쏟아지고 사람들이 흘러넘치는 광장에서 바람의 소리를 듣고 느끼며 소리쳐 외치는 것이다. “도라야키 있어요” “도라야키 사세요” 
이로써 오카나의 분신인 카나리아도, 도쿠에도, 센타로도 그들을 묶어둔 세상의 편견을 벗어던지고 각자의 레프로사리움에서 해방된다. 도쿠에가 자신에게, 오카나에게, 센타로에게 말한 것처럼 그렇게.

“잊지 마. 우리는 세상을 보기 위해서 태어났고,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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