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아들과 아들의 어머니

세상에는 다양한 엄마들이 있다. 인간은 독립적인 주체이고 그들의 개성도 각기 다르니 당연한 일이다.

단지 결혼 후 출산한 모든 여성을 엄마라는 카테고리로 묶고 그들을 정의하고 암묵적으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가부장 체제하에서의 사회적 통념이다. 난 사회가 그 통념을 기준으로  좋은 엄마, 나쁜 엄마를 함부로 규정하고 칭찬과 비난을 일삼으며 여성들을 가스라이팅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구굴링을 해보면 엄마의 자격부터, 좋은 엄마, 나쁜 엄마, 최고의 엄마, 최악의 엄마, 심지어 좋은 엄마 테스트까지 엄마에

대한 분류들이 난무한다. 

 

우연히 Stephan Poulter의 5가지 유형의 엄마라는 문서를 보게 되었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Stephan Poulter의 5가지 유형의 엄마

1. Perfectionist mother (완벽주의자 어머니) 

일반적으로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가장 중요한 유형으로 지나치게 통제적이고 두렵고 불안한 여성이다. 완벽주의 어머니의 자녀는 감정적으로 공허함을 느끼고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에게 지나치게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2. Unpredictable mother (예측 불가 어머니)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 예측 불가능한 유형의 어머니이다. 다섯 가지 어머니 유형 중 가장 혼란스러운 유형으로 육아 스타일도 순전히 기분에 따라 좌우한다. 스스로 마음속에 문제 및 위기를 만들어 자녀에게 전달하므로 자녀 역시 분노 불안 우울증을 겪기 쉽다.

 

3. The best friend mother (친구 같은 어머니)

부모 자식 간의 경계를 설정하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자녀를 동등하게 대하는 것을 즐기는 유형의 어머니다. 모성을 받아들이면 인생이 끝나는 것이라고 믿으며 그 역할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자녀 입장에서 사실상 어머니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일찍 어른으로서 주도권을 갖고 책임감을 키우는 반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정서적 결핍도 경험한다.

 

4. The me-first mother (내가 우선인 어머니)

다른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능숙하고 관계 맺고 있는 사람을 꿰뚫는 직관과 통찰력이 있다. 하지만 자기중심적이고 불안정한 경향이 있으며 자녀를 별개의 개인으로 보지 못하는 유형의 어머니이다. 자녀들은 그들의 역할이 어머니를 빛나게 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며 모든 면에서 어머니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보다 더 중요하고 강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 결정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5. The complete mother (완벽한 엄마)

완벽한 어머니는 다른 네 가지 어머니 유형 중에서 최상의 요소를 결합한 유형이다. 자녀를 개인으로 인정하고 자녀가 스스로 독립하도록 도울 수 있고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모성에 전념한다. 자녀는 사랑받고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고 변화를 수용하며, 거절의 두려움 없이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 즉, 어머니와 감정적으로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독립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

 

로맹가리의 어머니와 도준의 어머니

영화속에서 수많은 어머니를 접했지만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엄마는 '새벽의 약속'의 로맹가리의 어머니와

한국영화 '마더'에 나오는 도준의 어머니이다.

 

로맹가리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전형적인 여성이다.

어려서부터 아들이 ‘싸워야 할 이유는 오직 여자, 명예, 프랑스’라고 세뇌를 시키며 완전체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줄거리는 너무 길므로 생략한다)

‘누군가 엄마의 욕을 하거든 들것에 실려 들어오라’는 식의 그녀의 훈육방식은 로맹가리의 성장동력임과 동시에  정신적 감옥이기도 하다.

 

엄마가 원하는 아들이 되기 위해 엄마가 조종하고 결정한 대로 따르지만 어머니를 좋아하는 자렘바라는 화가에게 어머니를 맡겨 버리고 싶은 욕망도 있다. 로맹은 “자렘바가 아버지가 된다면 마침내 내 숨통은 트일 것이다. 그럼 죄책감 없이 삶을 모험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로맹의 어머니는 “평생 한 남자를 열열히 사랑했다. 그는 날 존중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아니었다. 남자였지.”라는 말로 자신에게 남자란 로맹밖에 없음을 각인시키고 성숙한 성인 남자가 되기를 요구한다.

 

로맹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디에서 어떤 곤경에 처하던 나타나지만

직접 일으켜주는 대신 스스로 일어나라고 종용하는 방법으로 로맹을 이끈다. 죽기 전 250여통의 편지를 미리 써서 주기적으로 발송함으로써 끝까지 아들이 살아갈 에너지를 공급한 로맹의 엄마는 ‘여성들의 열열한 추앙을 받는 명예로운 프랑스 작가가 된 아들, 로맹’으로 인하여 본인의 해피엔드를 만들어낸다. 로맹을 철저하게 어머니의 아들로 키워낸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 영화 ‘마더‘의 김혜자는 아들에 대한 기대와 욕망이 애초에 없다고 봐야 한다.

지능이 낮은 아들 도준은 다 큰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혜자의 돌봄 대상일 뿐이다.. 동네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도준이 용의자로 체포되는데 혜자는 모든 부모가 그렇듯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혜자가 도준의 범죄를 믿지 않는 이유는 보통의 부모와 다르다.

내 아들의  성품이  그럴 리가 없다라기 보다는 내 아들에게 그럴만한 지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범인을 직접 찾아나선 혜자는 자신의 바보 아들 도준이 진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성을 잃는다. 혜자는 도준의 범죄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목격자를 죽이고 증거를 불태워 없애 버린다. 경찰은 다른 범인을 지목하는데 그 역시 도준과 마찬가지로 장애아이다. 그가 범인이 아님을 알고 있고 그에게는 도준처럼 구해줄 엄마도 없다는 사실에 괴롭지만 혜자는 외면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픔을 잊게 해 준다는 혈 자리에 침을 놓은 혜자는 춤추는 무리들 속에 섞여 미친 듯이 춤을 춘다. 미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혜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들의 어머니는 그렇게 아들로 인한 번뇌 속으로 들어간다.

과연 세상의 어머니들은 저 5가지 유형중의 하나일까?

로맹가리의 어머니와 혜자는 어떤 유형의 어머니인가?

로맹의 어머니를 4번째 유형이라고 분류하더라도 도준의 어머니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머니를 단순히 몇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심지어 좋은 엄마, 나쁜 엄마로 구별하는 것에는 화가 나기도 한다.

로맹가리의 어머니든 도준의 어머니든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고

'어머니의 아들'인지 '아들의 어머니'인지 와닿는 느낌이 다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때론 옳고, 때론 그르며, 때론 숨 막히고 지겨운 존재이고, 때론 다정하고 인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