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동물 - 인간
조지 오웰의 Animal farm에서 인간은 소비만 하고 생산은 하지 않는 유일한 동물로 비유된다.
열심히 일하는 동물들과는 대조적으로 동물을 부리고 그들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으며 때론 잡아먹기까지 하는 인간은 생산성 없는 무용한 존재이며 동물의 적이다.
그렇게 인간을 자신들의 세상에서 배척하고 혁명을 꾀했던 동물들은 그 안에서 또 지배 계급과 노동 계급으로 분화한다. 기득권을 거머쥔 탐욕스러운 동물들은 그들이 배척했던 인간들과 같아지면서 동물과 인간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인간의 세계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지배계급과 피지배 계급으로 나뉘어 왔다. 동물 농장의 동물들처럼 열심히 일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노동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 계급이 있는가 하면, 동물들에 의해 인간으로 규정되었던 존재들처럼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쓸모없다고 간주되는 지배 계급이 있어왔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 인간 사회에서 권력을 거머쥐고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부상한 것이 전문가 집단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반 일리치이다.
무엇이 우리를 쓸모없이 만드는가?

이반 일리치는 무엇이 우리를 쓸모없이 만드는가 (원제 : the right to useful unemplyment) 에서 사람들은 상품이 흘러넘치는 사회에서 상품의 사용 가치를 자율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고 한다. 왜냐면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전문가들에 의해서 교묘히 만들어진 needs를 나의 needs로 착각하는 소비 패턴을 취하기 때문이다.
TV를 켜보자.
A 채널에서는 전문가가 출연해 빈혈 환자들에게 유용한 영양소를 설명하고 B홈 쇼핑에서는 그 영양소가 담겼다는 건강식품을 판매한다. C 채널에서는 수면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전문가가 설명하고 D 채널에서는 인체 공학 침대 매트리스를 판다. 사람들은 다음 달 카드 청구서를 잠시 잊은 채 전화기를 든다.
그런가하면 유튜브에서 교육 전문가의 강연을 듣고 마음이 급하고 불안해진 부모들은 알라딘에서 그들의 책을 주문한다. 책을 읽을수록 자녀에 대한 책임감은 강해지고 자신의 무능함은 크게 느껴져 결국 무리수를 두는 교육과정에 편승하며 더 많은 노동으로 그 비용을 감당한다. 간단히 말하면 "보통 사람"이 자신의 수입 범위 내에서 살고자 하는 욕구, 의지 및 능력은 꺾이고 만다는 것이다. 일리치는 전문가들은 사람들의 needs를 형성해서 주입시키고 그들을 조종하고 불구로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며 그들이 아무런 지탄도 받지 않고 행해온 반사회적 기능에 대해 비판하고 동시에 그들에게 속아 자신을 구속해온 시민들의 안일함도 꾸짖는다.
그렇다면 전문가 독재 사회에 속박되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 매일 쏟아져나오는 지식 정보에 눈을 감는 것일까?
일리치는 그 방법이 새로운 자급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며 우리에게 생산을 명령할 수 있는 지위에 있어야 하는 것은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우리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유익한 결과, 즉 주체적 생산과 소비행위에서 나오는 만족감이라고 주장한다.
처음엔 원제 the right to useful unemployment를 보고 유용한 실업이란 과연 무엇인지 궁금했다. 사회적으로 실업이란 자신이나 이웃에게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게으름과 무능함으로 인식되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조금 이해가 된다. 우리는 어딘가에 고용되어 직접적인 생산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유익해질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일리치를 통해 이런 화두에 접근하긴 했지만 그 답을 일리치에게 구하면 안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리치 역시 전문가 집단에 속하기 때문이다. 자급 사회로 돌아가 나의 needs를 내가 찾아내고 나의 needs를 충족시키는 기쁨을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란 무엇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생기는데 일단 내 일상 속에서 미니멀리즘을 실행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모든 전문가를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또 있으며 그것이 명예나 사회적 책임이라기보다는 돈이라는 생각에 이르면서 조금 찝찝한 마음이 들긴 한다. 물론 당장 카드값 결제를 걱정하는 내가 염려할 부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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