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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책

레옹과 나의 아저씨

by 7시에 말자씨는 2022.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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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과 나의 아저씨

레옹은 청부 살인업자이다. 주로 토니라는 이탈리아인에게서 사건을 알선받고 처리한다. 레옹의 일상은 몹시 단순하고 정신세계는 빈곤하다. 의뢰받은 일처리를 하고 화초를 보살피는 게 전부이다.  글을 몰라 은행 업무를 보지 못하는 레옹은 번 돈을 꼬박꼬박 부모에게 갖다 맡기는 착한 아들처럼 토니에게 맡기며 그의 말에 순종하고 의지한다. 레옹이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것을 원치 않는 토니는 레옹이 찾아올 때마다 우유를 내놓으며 어린아이 다루듯이 그를 조종한다. 레옹은 자신의 울타리 속에서 머무르며 외부로 나갈 생각도 없거니와 누군가 자기의 영역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아적 자기애로 지배를 받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그런 레옹의 세계 속으로 우연히 마틸다가 들어오면서 예기치 못했던 변화를 겪게 된다. 
마틸다의 아버지는 스탠필드라는 마약과 연루된 부패한 경찰의 마약을 가로챈다. 그 이유로 스탠필드는 마틸다의 가족을 살해하는데 마틸다가 가까스로 도망쳐 레옹의 집으로 뛰어든 것이다. 레옹은 고민한다.  " 나는 이 자리에 주저 앉을 것인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마틸다를 받아들이는 일은 그녀를 따라오는 위험요소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늘 자기 세계에 갇혀있던 레옹이 이러한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는데 굉장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우리는 잠든 마틸다의 이마에 총을 겨누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레옹은 마틸다로 인해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고  마틸다를 괴롭히는 악의 축 스탠필드와 폭사하는 방식으로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을 실천한다.

한편,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의 박동훈은 건축 구조 기술사라는 직업을 가진 평범한 회사원이다. 크게 불만은 없지만 그렇다고 행복할 것도 별로없는 그저 그런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란 형제들이나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새벽 축구를 하고 떠들썩하게 술판을 벌리는 정도이다. 박동훈의 사무실에는  대물림된 빚과 폭력에 시달리고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소외된 소녀가장 이지안이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본인 역시 회사 내 권력 싸움에 연루되고 그 싸움의 상대가 자신의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고 괴로워하지만 박동훈은 이지안의 고달픈 인생을 외면할 수가 없다. 박동훈은 이지안이 그의 폰에 도청 앱을 깔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청하며 자신을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지안 곁에서 머물며 그녀가 사회 제도적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박동훈은  그녀 곁에 괜찮은 어른 한 명 만 있었어도 겪지 않았을 이지안의 불행들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소외되고 멸시당하는 사회 풍토에서 이지안이 겪었을 그간의 상처들을 박동훈은 주변의 어른들과 더불어 치료해주고 안아준다.

 



마틸다의 아저씨 레옹과 이지안의 아저씨 박동훈

인간은 어른이 되는 단계에서 자신에 대한 관심을 밖으로 돌리며 외부인들과의 관계를 맺게 된다. 바로 그 사회적 측면에서 얘기를 해 보자면 마틸다의 아저씨 레옹과 이지안의 아저씨 박동훈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토니라는 가스라이터 아래서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철저하게 감정을 억제하며 냉정하게 판단하고 기다리도록 길러진 레옹과는 반대로 박동훈에게는 넘친다 싶을만큼 충동적이며 온정적인 가족들이 있다. 레옹이 홀로 우유를 마시고 화초를 돌보며 토니가 시키는 대로 순응하는 성장하지 못한 아이 같은 어른이라면 박동훈은 친구들과 축구 모임을 하고 술을 마시고 직장 동료들과 갈등하고 비겁하게 타협을 하기도 하며 좋은 제안을 박차고 나오기도 하는 보통 어른이다. 

레옹은 마틸다와 함께하면서 드디어 관계 형성을 시작한다. 레옹은 마틸다에게 총쏘는 법을 가르치고 그녀로부터 글자를 배운다.  이제 감정을 표출할 줄도 알게 되며 토니의 지시를 거부하기도 한다. 비로소 독립의지를 갖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인데 그 대가는 죽음이다.  레옹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것을 용서할 수 없었던 토니는 레옹과 마틸다의 은신처를 스탠필드에게 고자질하고 그들은 경찰에 포위된다. 마틸다를 구해내고 죽어가던 레옹은 스탠필드가 마틸다에게 복수하지 못하도록 폭탄을 터뜨려 같이 죽는다. 레옹은 마틸다에게 화분을 건네며 마지막으로 한 말처럼  잠도 자고 뿌리도 내리며 마틸다와 함께할 것이다.   그러나 박동훈은 다르다.  주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지안을 성장시키고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 홀로 어려움에 처한 어린 여성과 그 여성의 든든한 주변인이 된 남성 이야기라는 걸 빼면 너무 동떨어진 시대와 배경 속 두 이야기는 별 연관성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을 보면서 왜 레옹이 생각났는 지는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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