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책

81일간의 공포를 뚫고 나오다. '트리 어브 피스' - 넷플릭스 영화

by 7시에 말자씨는 2023. 3. 13.
728x90

넷플릭스 영화 ‘평화의 나무’는 작가이자 감독인 Alanna Brown가 1994년 르완다 대학살 동안 숨어있던 여성들의 다양한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그의 데뷔작이다.
 
1994년 후트족 출신의 르완다 대통령이 살해되고 르완다는 말 그대로 폭력과 죽음, 파괴로 얼룩진다. 후투족은 투치족과 후투족 중 온건파들을 색출해서 무차별 학살한다. 르완다 수도 키칼리에서 꽤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후투족 온건파 프랑수아는 그의 아내 아닉(Eliane Umuhire), 수녀 지넷(Charmaine Bingwa), 미국인 평화 봉사단 단원 페이톤(Ella Cannon), 투치족 소녀인 무테시(Bola Koleosho)를 그의 집 부엌 아래 창고에 피난시킨다.
영화는 아닉이 지하실에서 피난해 있는 동안 기록한 일기를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 영혼이 잠들고 싶어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라는 그녀의 기록을 보면 내전의 공포와 굶주림의 고통과 존엄을 잃은 인간의 내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이 4명의 여성도 각자의 아픔과 상처가 있다. 아낙은 지금 아기를 갖기까지 4번의 유산을 겪었다. 모테시는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끔찍한 기억과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던 부모를 포함한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차 있으며 지넷은 엄마를 자살로 몰고 간 아버지를 용서하기 힘들어서 괴롭다. 페이톤 역시 음주운전으로 남동생을 죽게 만든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은 아낙의 집 지하 창고에 갇혀서 먹을 것 때문에 다투고, 앉아서 쪽잠을 자고, 한쪽 구석에 구멍을 파고 배설을 한다. 그녀들이 바깥 공기를 맡을 수 있는 때는 오직 프랑수아가 먹을 것을 가지고 와서 천정문을 열어줄 때이다..
 
4일, 6일, 15일, 56일, 77일, 그녀들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지만 아닉의 뱃속에서는 아기가 자라고 있고 성난 짐승처럼 적개심에 차 있던 모테시도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6일째 되던 날, 프랑스와가, 찾아와 백인 여성만 구조해 간다는 UN의 계획을 전하고 페이톤에게 돌아가라고 한다. 하지만 페이톤은 그들만 남겨두고 갈 수 없다며 누워 버린다.

사진 출처 :다음 이미지

여성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의 보편성은 그들을 끈끈한 자매애로 결속시키는 경우가 많다.
고통의 순간에 서로의 허물을 감싸고, 상대의 나약함을 비난하는 대신 연대하면서 회복력을 갖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그 자매애 속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녀들은 서로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페이톤이 가방에 넣고 다니는 동화책 Seeds of Love와 Trees of Peace를 낭독하고 단순한 게임을 하면서 일상적인 기쁨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내전은 쉽게 끝나질 않고 프랑수아마저 위기에 처한다. 후투족 온건파에 속하는 프랑스와와 아닉도 후투족 민병대원 세바의 색출 대상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와가 그녀들을 찾아오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극심한 공포와 기아에 아닉은 악몽을 꾸고 환각에 시달리고 페이톤은 질식해서 호흡 곤란이 오는 등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려워진다. 이제 프랑스와마저 죽었다고 생각한 아닉, 자넷, 페이톤과 모테시는 81일째 되는 날, 직접 천정문을 열고 탈출한다. 그때 투치족 중심의 르완다 애국전선( RPF) 대원과 함께 프랑스와가 나타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는 거의 대부분 지하 조그만 창고 안에서 네 명의 인물들과 아주 한정된 소품들로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비좁은 공간에서 불안과 공포에 떠는 인간들의 나약함,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배고픔과 생리 현상,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연대의 본질을 배우들이 너무나도 잘 소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영화의 포스트 스크립트에서는 르완다의 대량 학살이 있은 후 국가를 치유하기 위한 캠페인에 여성들의 참여가 컸다고 언급되어 있다. 오늘날 르완다는 정부에 임명된 여성 비율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높다. 숨겨진 지하실에서 의회에 이르기까지 르완다의 평화를 주장하는 여성들 덕택인지는 몰라도 르완다는 더 이상 1990년대, 100만 명 이상을 학살한 ‘인종청소’로 악명 높은 내전 지역이 아니다.
 
@@
여행 관련 앱인 ‘유즈바운스’는 ‘나 홀로 여행하기에 가장 안전한 10개 국가 중 르완다를 6위로 뽑았다. 전 세계의 각종 통계자료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 Numbeo에서 차용한 자료를 토대로 최근 범죄 발생률을 고려해서 선정한 것이라고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