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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열등 기능도 필요한 사회

by 7시에 말자씨는 2022.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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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사고 기능의 시대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고 기능은 곧 생존 기능이다. 사고 기능이 발달하지 못한 개인들은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도태된다. 현대의 교육은 인간이 성인으로 성장해서  안정된 직업을 찾아낼 수 있도록 사고 기능을 키우는데 집중한다. 뛰어난 사고 기능을 소유한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고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학교에서, 강연장에서 심지어 가정에서조차 지겨울 만큼 세뇌한다. 이처럼 사고 기능을 강조하는 사회는 그 이면에 잃고 있는 것 역시 많다.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합리적이지 못하고 비 과학적이라고 배척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혈액형과 MBTI에 의한 분류의 불편함

 

MBTI 검사가 유행이다. MBTI는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을 관찰하여 그들의 차이점을 찾아내고 범주화한 것이다. MBTI가 개발된 목적은 자신을 이해하여 타인과 나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상호 공생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요즈음 사람들은 과거에 상대의 혈액형을 묻던 만큼이나 자주 MBTI유형을 묻는다. 

사람들이 나의 혈액형을 물어올 때 선뜻 답하지 못하거나 아무렇게나 거짓말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사람이 혈액형에 따른 성격 분류에 대한 맹신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이다....

언젠가 "A형은 소심하고, O형은 화끈하며, B형은 다혈질이고, AB형은 미친놈‘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과 만난 적이 있다. 본인은 시원시원하고 이타적인 O형이며 또라이 AB형과는 상종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AB형을 가진 나는 그 자리에서 진실을 말해 그를 당황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므로 O형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그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웃기는 해프닝이었지만 나 역시 그 후 그를 만나고 싶진 않았다.

 

사람들이 MBTI유형에 대해 묻는 것도 어찌 보면 마찬가지이다. 자신과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의도보다는 비슷한 유형끼리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들과 더불어 소통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과 함께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나의 주 기능을 찾아내 충분히 활용하고 나와 주 기능이 같은 사람과 어려움 없이 소통하고 일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모든 혈액형 타입의 성격이 혼재하듯 MBTI의 모든 유형이 들어있고 심지어 바뀌지 않는 혈액형과는 달리 MBTI는 처하는 환경과 성장 단계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너무 주 기능만을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지루함을 느끼고 권태로워지며 의욕이 상실된다. 주기능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쓰러지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열등 기능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자신의 열등 기능에 눈을 돌리면 외면하고 싶은 부분을 봐야 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의외로 새로운 잠재력을 발견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를 향한 나의 바람은 이것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현대 사회의 주 기능은 사고 기능이다.
우리에게 그 주 기능만을 키우도록 강요하고 훈련시키는 부작용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사회가 손쉬운 주 기능, 즉 사고 기능만을 계속 강조하고, 사고 기능을 기진자들을 위한 펜스를 만들어 가두고, 그들만을 부려먹게 되면 결과는 뻔하다.  펜스 안의 사람들은 지치고 펜스 밖의 사람들은 소외될 것이다. 간혹 크게 성공하여 부와 명예를 얻고 타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사람들이 세상을 등졌다는 뉴스를 접한다. 왜 그토록 명석한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했을까? 혹시 그들은 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주 기능만을 너무나 오랫동안 착취당한 채 지쳐버린 것은 아닌지 감히 짐작해 본다. 

사회는 논리적 사고를 하고 정확한 판단을 하는 지식 기능뿐만 아니라 논리가 빈약하고 데이터보다 마음이 앞서며 불의를 보면 앞뒤 안 가리고 뛰쳐나오는 열등 기능도 적절히 써먹을 줄 알 때 오래오래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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